컨텐츠 바로가기

서울도시건축센터

전체메뉴펼치기

2020 슬기로운 도시생활

서울의 도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상생활'과 이에 따른 다양한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본격 대화 살롱이다. 3개의 시즌동안 전문가들과 분야별 패널들을 초대하여 매회 2번의 라운드테이블을 진행하고, 주요 대화와 키워드를 SNS로 공유하며 지금의 서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본다.

일정 키워드 인물 내용
2020.07.08 시즌1-1: 당신의 밤은 안녕한가요? 저녁이있는삶, 심야도시, 독서, 매거진, 가드닝 정인성_심야서점 책바 다양한 공간에서 일과를 마친 도시인들이 각자 ‘도시의 밤’을 보내는 슬기로운 방법을 소개, 독서, 가드닝 등 자기만의 시간을 통해 내일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마련
윤진_매거진 아침
장은석_가드닝 스튜디오 수무
2020.07.09 시즌1-2: 내 몸과 마음을 소중하게 자연, 먹거리, 제철재료,예술,구독 김현정_먹거리 인시즌 도시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에 대응하기 위해 각자 연대감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 자연과 예술은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기 위한 연결고리
신이현_내추럴 와인 레돔
남필우_그림구독서비스 핀즐
2020.09.09 시즌2-1: 넥스트 공유도시 : OPEN & SHARE 공유, 플랫폼 임진영_오픈하우스서울 공간 경험과 관련된 장소 기반의 다양한 플랫폼 안내
소동호_디자인스튜디오 산림조형
박찬빈_커뮤니티매니저 맹그로브
2020.09.09 시즌2-2: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연결하는 집 주거, 중간주거,공생 임태병_건축사무소 문도호제 다양한 개성의 주거문화와 이를 뒷받침하는 동네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과정 소개
신윤예_디자인 공공공간
박찬용_잡지 에디터
2020.11.18 시즌3-1: 변화의 시대, 다시 디자인하는 워크라이프 워크라이프 김정임_건축사무소 서로아키텍츠 일의 태도와 방식을 재설계해 도시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 이야기
김경진_빅토리아 베이커리
한지인_브랜딩 기획자∙디자이너
2020.12.09 시즌3-2:이상과 현실을 잇는 즐거운 나의 도시 미래, 라이프스타일 손창현_라이프스타일 플랫폼 OTD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거점이 되는 도시의 감성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들 소개
전은경_월간 디자인
차우진_칼럼니스트 TMI.FM

시즌1-1: 당신의 밤은 안녕한가요?-Better Night, Better Life
시즌1-2: 내 몸과 마음을 소중하게-Wellness in City
시즌 2-1: 넥스트 공유도시 : OPEN & SHARE
시즌 2-2: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연결하는 집
시즌 3-1: 변화의 시대, 다시 디자인하는 워크라이프
시즌 3-2: 이상과 현실을 잇는 즐거운 나의 도시

시즌1-1: 당신의 밤은 안녕한가요?-Better Night, Better Life

시즌1-1: 당신의 밤은 안녕한가요?-Better Night, Better Life

사람들은 도시의 여러 공간에서 먹고, 자고, 일하며 각각의 문화를 만들어간다. 이처럼 공간은 삶이 펼쳐지는 배경이요, 사람을 잇는 교류의 지점이다. 공간을 사람으로 채우면 역사가 시작되고, 대화로 채우면 새로운 문화가 쓰이는 이유다.
'서울도시건축센터'에서 준비한 <슬기로운 도시생활>은 매회 3인의 분야별 패널과 함께 도시 공간에 담긴 사람들의 '문화'와 '일상생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본격 대화 살롱이다. 여름부터 겨울까지 3개의 시즌으로 도시인과 만날 <슬기로운 도시생활>의 시즌 1이 7월 15일(수)에 온라인으로 시작된다. 의미 있는 대화를 기록하고 수집하면서, 지금의 서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보자.
눈을 뜬 순간부터 해가 질 때까지, 숨 가쁜 업무로 정신없이 몰아치는 도시인의 낮. 어두워진 하늘과 함께 찾아온 도시의 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이다. 누군가는 오늘의 하루를 정리하며 내일을 준비하고, 누군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누리며 영감 가득한 시간을 보낸다. 서로 다른 패턴으로 밤을 디자인하는 세 명의 패널과 함께 할 첫 번째 대화에서는 우리 모두가 맞을 '도시의 밤'을 이야기한다.

#아침

첫 번째 대화의 패널인 윤진 편집장은 밤이 되면 언제나 다섯 줄의 일기를 쓴다고 했다. 오늘 있었던 일과 기억나는 것들을 종이 위에 천천히 분출하는 어두운 밤. 분출 후 둥글어진 마음은 곧 찾아올 아침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여백을 준비한다.
밤을 보내는 그의 방법론을 꼭 따를 필요는 없다. 우리의 낮이 다르듯 각자에게 맞는 밤 또한 제각각이기에. 다만 얼굴을 마주하고 저마다 열심히 빚어온 밤의 모습을 나눌 때, 개인의 ‘다름‘이 구분 짓는 경계는 조용히 허물어진다. 경쟁하듯 치열하게 살아가는 도시인에게 필요한 것, 바로 그 대화가 열릴 ‘제3의 공간’ 아닐까.
도시인의 하루는 짧은 아침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각기 다른 모양으로 시작된다. '윤진' 편집장의 매거진 「Achim(아침)」은 그 아침을 영감으로 채워주는 모든 것을 다룬다. 2015년에 시작된 넓고 얇은 한 장의 타블로이드 매거진 「Achim」은 해마다 네 명의 크리에이터가 네 번의 아침 인사를 건네는 계간지다. 오프닝 레터, 인터뷰, 에세이, 도시의 문화를 즐기는 팁부터 아침 식단 레시피, 시리얼 정보, 영감을 전하는 음악과 사진까지 담겨있어, 마치 잘 차려진 도시의 아침 식탁을 연상케 한다. '밤이 있기에 아침이 존재한다'는 윤진 대표와 함께 개운한 아침을 만드는 밤의 일들을 이야기해본다.

#가드닝

장은석 님이 직접 가져와 보여준 남아프리카의 식물 구갑룡은 한국의 여름에 새 잎을 마구 뻗어내는 일반적인 식물과 달리, 조용히 휴면기에 접어든다. 구갑룡에게 가장 편안한 여름은 낯선 열기의 환경에 잎을 접고 자기만의 편안한 방식으로 순응하는 시간인 셈이다.
수많은 도시인도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가득한 낮을 보낸다. 하루치의 책임감을 끝낸 우리에게 찾아오는 밤, 그때만큼은 내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무엇이든 찾아 누리는 게 어떨까. 그것을 찾는 순간, 진짜 ‘나’와 마주하며 자신을 편안하게(수, 綏) 어루만지는(무, 撫) 나만의 밤이 이어질 것이다.
삭막한 도시는 삭막한 도시인을 만든다. 도시 곳곳의 길모퉁이나 자투리땅을 작은 쌈지공원으로 조성하고, 개인∙상업∙전시 공간 등을 식물로 가득 채운 플랜테리어가 성장하는 이유다. 도시의 삭막함을 없애는 가드닝 스튜디오 '수무(綏撫)'의 '장은석' 대표는 편안하게(綏) 어루만지는(撫) 식물을 도시인과 연결하는 플랜테리어를 선보인다. 구조적인 건축물에 녹빛 생기를 불어넣는 프로젝트와 식물 이론 수업∙실습 등을 진행해, 도시인이 자신을 '수무'하는 시간과 마주하도록 돕고 있다. 장은석 대표와 함께 공간과 어우러지는 식물로 편안하게 휴식하는 도시의 밤을 나눠본다.

#독서 #저녁이있는삶

도시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산다. 그렇게 같은 도시를 함께 살아가는 타인과 소통할 때 우리는 많은 것을 얻는다. 마치 ‘슬기로운 도시생활’처럼. 하지만 자기만의 사색을 갖는 밤의 시간 또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안겨준다. 재즈 바를 7년간 운영하던 무라카미 하루키는 바의 문을 걸어 닫는 새벽 3시가 되면 부엌에서 홀로 술을 홀짝이며 쓴 소설로 등단했다.
누구에게나 밤은 찾아온다. 그 어두운 밤에 문학을 즐기며 홀로 적당히 마시는 술은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고, 숨겨진 무엇인가를 끄집어내는 매개체가 되기에 충분하다. 늦게까지 도시의 밤을 밝히는 불빛들 속에서 홀로 조용히 누리는 사색과 감수성 넘치는 밤, 어쩌면 도시인의 특권이지 않을까.
책과 술, 사람이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낭만의 도시를 꿈꾸던 '정인성' 대표. 그가 연희동에 '책바'를 연지 올해로 5년째다. 15평 남짓의 주택 창고는 바쁜 도시인의 일상 패턴에 따라 늦게 열고 늦게 닫는 심야 서점이 되어 지친 이들을 맞이한다. 그의 공간을 찾은 도시인은 한 권 한 권 엄선해 채운 책장을 뒤로하고, 소설 속 술을 재현한 칵테일을 마시며 영감 가득한 밤을 보낸다. 책 권하는 서점 주인이자 차별화된 안식처를 구현하는 마케터 정인성 대표와 함께 새로운 밤의 문화를 이야기한다.

시즌1-2: 내 몸과 마음을 소중하게-Wellness in City

시즌1-2: 내 몸과 마음을 소중하게-Wellness in City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도시의 환경 문제나 정신적 스트레스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닌지 오래다. 특히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겪으며 사회 전반적으로 몸과 마음의 면역력을 높이는 방법에 대한 관심이 더욱 급증하고 있다.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몸과 마음의 면역력을 높이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은 무엇일까? 몸과 마음이 건강한 세 명의 패널과 갖는 두 번째 대화로 일상의 감각을 경쾌하게 깨워보자.

#건강 #먹거리

어떤 일상에 익숙해지는 순간, 많은 것을 흘려보내게 된다. 너무 익숙한 나머지 도시에 사는 것을 그리 의식하지 않고 지낸 시간도 적지 않을 것이다. 반복에 무뎌진 시간을 보내다 <슬기로운 도시생활>을 통해 각자의 공간과 도시, 또 그 속에서의 우리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 새로웠다는 김현정 님.
그가 패널로 참여했던 두 번째 대화에서 가장 많이 오른 단어는 ‘취향’이었다.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결국 취향을 만들고 누리며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취향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안고 돌아갑니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김현정 님의 인터뷰는 끝났지만, 그의 브랜드에 선명히 녹아있는 또 다른 취향을 떠올렸다. 그가 지금까지 쌓아온, 그리고 앞으로도 쌓아갈 취향의 유산은 분명 다채로운 색상일 것이라고 확신하며.
'빠르게 해결'하는 '간편함'. 도시인의 식탁을 표현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도시인들은 먹고 마시는 생활과 환경에 무한한 관심을 갖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여유롭고 건강한 한 끼를 누리기란 쉽지 않다. 농원의 건강함을 도시인의 식탁까지 전하는 '김현정'∙'이소영' 공동대표의 'In Season(인시즌)'은 간편한 도시 먹거리를 만드는 식품 브랜드다. 제철에 난 괴산의 식재료를 전통 기술로 발효해, 도시인들이 먹기 좋도록 시럽, 칩, 페이스트 등의 상품으로 개발하고 있다. 김현정 대표가 'In Season'이란 이름에서 오롯이 느껴지는 제철의 기운으로 건강한 식탁을 쉽게 차리는 방법을 귀띔한다.

#구독 #예술

두 번째 대화의 패널로 함께한 남필우 디렉터. 필름 사진 「hep」 매거진을 발행하는 그가 여전히 필름 사진으로의 일상 기록을 고집하는 국내외 작가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필름 사진을 찍기 시작했나요?“. 십중팔구는 부모님 장롱에서 카메라를 찾거나, 할아버지의 유품을 받았다고 했다. 이전 세대의 문화적∙예술적 유산에서 시작된 취향인 셈이다.
현재가 있으면 과거가 있고, 미래도 있다. 우리는 과거에 무엇을 했고 사진 속에 어떻게 남아있을까? 내가 찾고 싶은 취향은 바로 그곳에 있다. 과거의 유산에서 현재의 취향이 출발하듯, 지금 쌓아가는 취향이 미래의 자녀에게 전해줄 영감을 상상해보자. 미래로 이어질 우리의 삶 자체를 예술로 만드는 것. 그 일상의 지점에서 세대를 아우르는 ‘슬기로운 도시생활’이 시작된다.
코로나19 재확산을 막기 위해 미술관이 연이어 문을 닫는 요즘. 문화예술에 대한 도시인들의 갈증이 커지고 있지만, 일상에서 즐기는 예술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핀즐(Pinzle)'은 A1 대형 사이즈의 감각적인 작품 프린트를 큐레이션해 매월 배송하는 그림 정기구독 서비스다. 콘텐츠의 독창성과 심미성을 인정받아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Red Dot Design Award)'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부문의 출판 & 프린트 미디어 분야를 수상하기도 했다. 핀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남필우'는 작품 너머로 존재하는 예술가의 철학과 아름다움을 전해 일상과 공간을 한결 풍요롭게 만든다. 필름 포토그래피 「hep」 매거진을 발행하는 편집장이기도 한 그가 일상의 생기를 되찾는 예술 향유법을 전한다.

#자연 #먹거리

내추럴 와인의 모든 시작은 땅이다. 와인을 만든 과일이 온 곳, 과일이 키워진 순간의 모든 날씨, 농부의 손길, 그곳의 동식물의 내음 등 자연의 모든 것이 병 속에 축약되어있다.
도시병과 문명병으로 점철된 도시의 유일무이한 숨통, 자연. 우리가 도시를 더욱 사랑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만약 냉장고에 퇴근 후 마실 내추럴 와인 한 병이 있다면 어떨까? 시원한 자연 한 모금을 상상하는 귀갓길의 마음이 가벼워지고, 그렇게 우리의 인생도 조금 더 가벼워진다.
내추럴 와인은 인위적인 첨가물을 일체 배제하고 야생 효모로만 만든 와인이다. 푸른 숲에서의 휴식이 육체적 도시병을 해결해 주듯, 잘 만든 내추럴 와인 한 잔은 심리적 도시병을 치료해 준다. 프랑스 농부 '도미니크 에어케(Dominique Herque)'와 한국 작가 '신이현'이 이끄는 '레돔(LESDOM)'은 도시인에게 충주의 맛을 전하는 내추럴 와이너리다. 레돔의 양조장은 충북 땅의 기운, 사과를 기르는 농부의 땀, 농부와 인사하며 열매 따는 품앗이를 주고받는 동네 사람들의 삶이 오가는 공간이다. 그래서일까, 레돔 와인의 한 잔에는 그 과일이 자란 땅, 나무, 바람, 햇빛이 온연히 담겨있다. 따뜻하고 향긋한 와인 칼럼니스트, 신이현 작가와 함께 몸과 마음의 감각을 일깨우는 방법을 이야기해본다.

시즌 2-1: 넥스트 공유도시 : OPEN & SHARE

시즌 2-1: 넥스트 공유도시 : OPEN & SHARE

'나'라는 존재가 수없이 모여 이루어지는 '사회'. 개인의 일상과 라이프스타일은 도시를 살아가는 누구나 대화의 재료로 삼을 수 있는 요소다. 도시 속 사람을 잇는 본격 대화 살롱 <슬기로운 도시생활> 시즌 1은 도시의 시작점인 '나'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이제 곧, 우리가 좀 더 먼 시각에서 함께 바라보는 지금의 '사회'를 이야기하는 시즌 2가 6인의 패널과 함께 시작된다.
2019년의 화두는 단연 '공유'였다. 확장하는 도시를 상상케 했던 '공유'는 2020년이 되자 마치 조류처럼 '코로나 19'라는 단어에 떠밀렸다. 바이러스의 전파는 전 세계 도시인의 공유적인 일상을 삽시에 뒤바꿨다. 변화는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물리적인 공간에서 작동하던 오프라인 기반의 플랫폼과 네트워킹은 일시 정지에 가까운 상태다. 제한된 대면과 빗장 걸린 공간으로 가득한 지금의 도시. 이제 누구와,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만나고 누려야 할까? 멎기 직전의 도시에서 우리가 나누던 것들, 그리고 앞으로의 도시를 나누기 위해 만날 수 있는 곳은 어디가 될지 첫 번째 대화에서 짚어본다.세계 유수의 도시들은 저마다의 역사와 문화로 대표되는 건축물을 가지고 있다. 건축과 공간은 도시인의 삶에 깊게 연관되어 있으며, 시민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서울은 이제 메트로폴리탄 도시로서 규모나 인구 면에서 세계적인 도시가 되었다. 풍부한 경제∙문화∙예술 자본이 흐르고, 사람과 사람이 이어진 도시로서의 정체성과 다양성을 확립해가는 시기라고 느껴진다.
슬기로운 도시생활 시즌 2의 첫 번째 대화는 "넥스트 공유도시 : OPEN & SHARE"이다. 패널로는 기획자이자 건축 저널리스트로서 영국에서 시작된 건축전문축제 오픈하우스(OPENHOUSE)를 서울에서 선보인 임진영 님, 을지로 기반의 디자인 스튜디오 산림조형을 운영하는 소동호 님, 임팩트 디벨로퍼 MGRV의 코리빙 브랜드 맹그로브(MANGROVE)를 기획 및 운영하는 박찬빈 님이 함께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던 연결이 가로막힌 지금, 앞으로 우리가 공유할 것의 다양성과 플랫폼, 커뮤니티뿐 아니라 도시와 밀접한 키워드인 로컬, 건축,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본격 대화에 들어가기 전, 워밍업 보드에 부착된 질문을 무작위로 골라 함께 답하는 여는 대화를 나눴다. 소동호 님이 고른 질문은 최근 코로나로 맞은 일상 전반의 변화였다. 코로나의 대유행으로 걱정과 불안이 일상에 파고들고, 특히 인구가 고도로 밀집되어 사회적으로 거리가 밀착될 수밖에 없는 게 지금의 서울이었다. 이에 대해 대부분은 공통된 대화를 나눴다. 현장에서 직접 보고 만지는 경험이 사라진 아쉬움뿐 아니라 비대면 화상회의의 증가로 개인의 사적 공간이 스크린을 통해 개방되며 여러 이슈가 생겨난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나 또한 평소에 지인이나 동료와 대화하며 여행과 같은 오프라인 경험의 그리움을 나눴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우리가 포기하고 배려해야 할 것에 대한 인식, 만남을 통한 직접적인 교류의 그리움 등은 나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위기 속에서도 서로 배려하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확산을 막으려는 정부와 시민의 노력이 이루어졌다. 비대면을 위한 적응을 잘해오는 셈이다. 또한 코로나-19의 위기에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부분은 있다. 소동호 님은 반대의 시선으로 위기를 바라보았다. 온전히 지킬 수 있는 개인의 시간, 시공간의 제약 없는 웹에서의 만남이 갖는 장점도 분명 있었다. 지금은 도시 속에서 이어졌던 피상적인 관계∙시간∙만남의 간소화, 개인의 생활에 집중하는 삶의 방식이 주목받는다. 홈루덴스의 재부상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이어가며 워밍업의 시간을 마쳤다.

#연결 #신뢰

임진영은 건축∙도시∙사회의 접점을 탐색하며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해왔다. 건축전문축제인 <오픈하우스 서울> 또한 탐색이 맺은 열매 중 하나다. 매해 축제가 열리는 10월이면 우리가 평소 길을 거닐며 눈 여겨만 보던 근현대 건축물의 초대장이 띄워진다. 공간을 사랑하는 도슨트들이 건축에 담긴 도시의 내력, 예술, 디자인, 환경을 풀어내며 사람과 공간을 이어주는 근사한 도시 축제다. 도시인들은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건축의 낮아진 문턱을 넘어선 순간, 장소를 재발견하며 도시와 '연결'된다. 개방이 만드는 교류의 경험과 도시에 대한 이해, 오픈 플랫폼의 미래를 임진영과 함께 그려본다.
"가치를 나누고 교류하는 중간 지대를 OPEN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사적 영역의 보호와 상호 간의 신뢰죠."
임진영님이 오픈하우스 서울의 캐치프라이즈인 "도시의 문턱을 낮추고 건축을 만나다"를 소개하며 패널 토크가 시작됐다. 오픈하우스 서울은 좋은 건축물을 직접 보고 경험하며 사람과 도시의 접점을 찾는 일종의 플랫폼이다. 숨겨진 건축물과 공간을 방문할 수 있다는 호기심을 끌며, 축제 기간마다 순식간에 신청 인원이 마감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건축을 물리적으로 사용하는 공유의 형태는 아니지만, 한정된 시간동안 탐방하고 탐색하며 건축을 함께 향유하고 이야기하는 관점에서의 공유가 이루어지는 축제다.
좋은 행사의 배경에는 대개 많은 고민이 뒤따른다. 임진영 님 또한 여전히 고민을 안고 있다. 해외는 공적 영역에도 좋은 건축물이 많은 반면, 국내의 좋은 건축물은 대부분 사적 영역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행히도 서울시도시공간개선단을 비롯한 공공건축의 영역에서 좋은 공간이 조금씩 등장하고 있지만, 임진영 님은 여전히 부족한 공급을 짚었다. 오픈하우스 서울의 목표는 사적 영역의 보호다. 단순히 문을 여는 것에 중점을 두지 않고, 사적 영역을 잘 보호하고 상호 간 신뢰를 쌓는 것이 앞으로의 오픈하우스 서울이 지켜야 할 가치라고 강조했다. 사적 영역의 보호가 사회적으로 약속된다면 전보다 더 많은 공간의 문이 불신과 경계 없이 열릴 수 있다. 도시를 살아가는 모두가 곱씹어야 할 부분이다.
주거 환경이 개선되면서 집이라는 공간의 기능∙구성∙역할∙사생활의 범위도 변했다. 임진영 님은 나태하고 게으른 거실의 탄생도 그 변화 중 하나임을 짚었다. 사적 영역이 존중되지 않던 시절, 집은 누구든 오는 것이 허용되는 장소였다. 지금의 집은 손님을 초대하는 것이 드문 사생활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처럼 중간 영역이 사라져 도시에서 교류되는 반공적 공간, 혹은 전이 공간도 함께 사라졌음을 임진영 님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사적 공간은 존중하되 누군가를 1년에 한 번쯤 초대해 그 공간의 가치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보호하는 것이 오픈하우스 서울의 출발점이다. 그런 만큼 도시에서의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공존하는 방법을 고민한다는 임진영 님의 이야기는 평소에 듣기 힘든 관점이라 흥미로웠다.

#장소성 #도심산업 #을지로

서울, 그중에서도 을지로의 특성을 사물로 만들어내는 소동호는 도시의 작업자다. 디자인 스튜디오 <산림조형>의 터로 을지로를 택한 지 6년 차에 접어든 지금, 지역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서 일관된 듬쑥함을 발견한다. 한국의 전통 기법과 을지로 지역의 산업 재료∙기법을 아우르며 충실한 장소성을 반영한 그의 조명과 가구는 흡사 서울의 풍경처럼 공간을 채운다. 일 년간 길에 놓인 의자를 수집해 재해석한 '서울의 길거리 의자들'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디자인 코드를 유쾌하게 전달하는 아카이브다. 도시의 시공간을 살피던 소동호는 이제 우리에게 어떤 시각의 디자인으로 지역의 얼굴을 공유할까?

"구세대와 신세대가 일대일로 만나 지식을 공유하며 협업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영향이 생겨요. 을지로가 조금씩 그 변화를 이끌고 있죠."
다음 패널이었던 소동호 님의 이야기는 을지로에서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로 출발했다. 공동화 현상이 심각했던 6년 전의 을지로는 중구청의 정책으로 예술가들이 빈 점포에 입주하며 새로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였던 소동호 님 또한 산림동에 자리를 잡고, 을지로 기반의 다양한 프로젝트에 기획자이자 디자이너로 힘을 더했다. 그가 총괄 아트디렉터로 참여한 는 중구청과 서울디자인이 국내 유명 디자이너와 을지로 조명거리의 상점을 1:1로 연결해 을지로만의 독창성이 담긴 조명 디자인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다. 지역 자원과 특정 산업을 바라보고 조합하여 유기적인 지식 공유를 만들어낸 디자이너의 접근 방식이 새로웠다.
또 다른 공유의 관점이 담긴 소동호 님의 프로젝트는 <서울의 길거리 의자들>이다. 을지로 거리에 널려있는 의자를 사진으로 기록해 온라인, 포스터 등으로 아카이빙하며 색다른 도시의 요소를 사람들에게 전달(공유)한다. 최근 많은 산업이 기획자이자 디자이너의 태도를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그 태도에서의 고민과 연계성, 새로운 시도를 소동호 님과의 대화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기획은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지역과 공간을 고민하며 자생성을 살리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근래의 을지로는 힙지로라 불리며 많은 주목을 받지만, 그 단면에는 특정한 부분의 모습만이 부각되는 아쉬움 또한 나눴다. 결국 도시와 산업은 유기적으로 얽혀있어, 도시인이 전체적인 시각을 가져야 서울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 모두가 공감했다.

#주거 #커뮤니티 #공감대

도시생활의 8할인 일과 집을 대하는 청년 세대의 태도는 유연하다. 각기 다른 일을 하는 이들이 공유 오피스에 모여 개인의 업무와 적당한 교류를 소화한다. 단칸방의 큐브 생활자로 사는 대신, 경제성도 얻고 외로움도 극복하는 공유 주거를 택한 수도 적지 않다. 청년들의 공유 방식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일종의 공간 협업 소비다. 독립성을 중시하면서도 뾰족한 공감대의 네트워킹을 원하는 청년들의 공유는 단편적인 '자리 나눠 쓰기'를 넘어 '생각과 문화를 주고받기'에 가깝다. 4년간 공유 기반의 글로벌 플랫폼에서 커뮤니티를 기획∙운영해온 박찬빈과 함께 바이러스 확산 이후의 공유 기반 플랫폼과 커뮤니티를 짚어본다

"가볍게 스치더라도 연결된 작은 연대가 혼자서,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 패널인 박찬빈 님은 공유 숙박, 공유 오피스 등 공유 비즈니스에서 쌓은 다년간의 경험을 기반으로 공유 주거인 맹그로브를 기획 및 운영하는 커뮤니티 시니어 매니저다. 2010년도에 시작된 공유 비즈니스는 최근 다양한 글로벌 플랫폼이 생기고 기술이 더해져 플랫폼 사업으로서의 본격 궤도에 올랐다고 한다. 이런 심상 공유 비즈니스가 확대되면서 공유 중심의 커뮤니티도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맹그로브의 입주자는 같이 사는 집의 공간 공유자들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연결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를 발견하고, 좀 더 독립되어 고민하는 시간의 전달이다. 이러한 전달은 단순한 공간 구성과 운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공유의 경험을 기획하고 공동체를 연결하는 커뮤니티 매니저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박찬빈 님이 정의한 커뮤니티 매니저는 브랜드의 접점에서 고객이 경험하는 모든 사이클에 관여하는 사람이다. 커뮤니티∙커넥터∙컬렉터∙큐레이터∙크리에이터라는 5개의 역할을 모두 수행하는 멀티 매니저이기도 하다. 공유 산업뿐 아니라 도시의 모든 산업에 필요한 역량이기에, 각자의 분야에서 이런 경험치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누구나 외롭지만 모이기엔 두려운 시점이고, 모여야만 하는 공유 산업이지만 정작 모이기 어려운 시기다. 하지만 대면과 비대면, 독립과 공유를 잘 접목한다면 공유 비즈니스뿐 아니라 지금의 도시에 다양한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가볍게 스치더라도 연결된 작은 연대가 개인과 공동체 모두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는 박찬빈 님의 마지막 말로 <슬기로운 도시생활> 시즌 2의 첫 번째 대화가 막을 내렸다.
같은 도시를 살아가는 전문가들과 마주 앉아 다양한 이야기를 편안하게 나누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넥스트 공유도시 : OPEN & SHARE"라는 주제 안에서 굉장히 다양한 개성과 분야의 이야기가 나왔기에 호기심을 더욱 자극한 시간이었다. 직전까지의 시간은 우리가 함께 나눌 것의 형태도, 종류도, 플랫폼도 예측할 수 없어 불투명하게 느껴지던 시기나 마찬가지였다. 이번 대화를 통해 앞으로 이루어질 공유의 모습을 어느 정도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뿐 아니라, 도시를 살아가는코로나-19로 변해가는 일상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여전히 개인의 가치가 담긴 도시생활이 존중받고, 이러한 기록과 행동이 다양한 프로젝트로 꾸준히 이어진다면 도시의 주체성과 다양성을 확장하는 <슬기로운 도시생활>이 이어지리란 믿음과 기대가 생겼다. 각자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 그리고 공유하는 것. 그것이 좋은 도시를 만드는 길이다. 좋은 도시는 좋은 시민들이 살고 있는 곳, 바로 그곳이다.

시즌 2-2: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연결하는 집

시즌 2-2: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연결하는 집

도시에는 수많은 공간이 있다. 카페나 꽃집 같은 작은 공간부터 학교나 경기장 같은 큰 공간까지, 제각각의 크기와 목적과 기능을 가진 공간들은 도시를 빼곡히 채운다. 극소수를 제외한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금자리, 집도 마찬가지다.
집은 도시를 이루는 아주 작은 단위이자 삶의 출발점이다. 개인 또는 한 가구의 무형의 삶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유형의 그릇이기도 하다. 가구원의 생활 구조∙형식∙행동에 따라 집의 모양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평형대에 따른 공간 구분은 비슷하더라도 개인의 삶과 가치, 개성과 욕망을 소비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해지면서 내부를 채우는 방식 또한 다양해졌다. 집 밖의 공간들이 잠시 머물며 시간을 보내는 대여의 성격이라면, 집과 동네는 [나의]라는 소유격이 자연스럽게 붙는 점유의 장소다.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사용자이자 관리자이며, 소유자이다.
내적으로 가장 편안하게 쉴 수 있으면서도 내 눈에 가장 만족스러운 외양으로 소품과 가구를 들이는 애착의 공간. 스스로 만들고, 치우고, 유지하며 인생의 조각을 성실하게 쌓아가는 공간. 집을 둘러싼 동네를 탐방하며 이웃, 골목, 상점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 이제는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외부에서 해결하던 것들을 집과 동네에서 소화하는 시기를 거치고 있다.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역할을 집과 동네에 기대하게 되는 지금, 다른 도시인들은 어떤 집의 모양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을까?
집은 도시를 이루는 아주 작은 단위이자 삶의 형태가 만들어지는 출발점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조건∙태도∙방식을 조합한 기준으로 동네를 고르고, 공간을 찾으며, 물건을 들인다. 개인의 삶을 보여주는 생활 포트폴리오와도 같은 집의 모양이 갖춰지면 가까운 이를 초대해 친밀한 관계를 쌓기도 한다. 이 공간은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외부 활동이 제한되면서 우리가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곳이 되었다. 특정한 장소에 오래 머물수록 그곳에 기대하는 가치는 비례하기 마련이다. 도시의 안팎으로 힘겨운 시기지만 외려 집과 그 주변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되는 지금, 두 번째 대화를 통해 서울 주거문화의 개성과 다양성을 나눠본다.

#조율 #중간주거

임태병은 건축의 영역을 '짓고 만들기'에서 '조율(기획∙운영∙관리)하기'까지 확장하고 싶어 하는 건축가다. 공간 조율은 올바른 동작으로 음색을 내도록 각각의 줄을 조정하고 관리하는 피아노의 조율과 비슷한 결을 가진다. 그가 조율하려는 또 하나의 공간 개념은 중간주거다. 집의 한 부분이 동네의 일부가 되는 구조와 동선을 배치하거나, 상업∙근린생활시설을 집과 유연하게 조합하는 등 [집-사람-동네]의 맞닿음을 실험하며 집과 도시의 접점을 다룬다. 골목의 집 열 채 중 두셋만 바뀌어도 동네의 표정이 바뀐다는 그의 생각을 바탕으로 도시 위의 집이 품을 수 있는 것을 헤아려보자.

“주거의 변화는 결국 사람들의 욕망과 맞물립니다.
욕망이 변하면 주거의 모습도 변할 수 있죠.
골목에 중간주거 두 개만 있어도 동네와의 접점과 거리의 풍경이 바뀝니다.
도시를 바꾸는 역할을 기대하며 이런 실험들을 하고 있어요.”

집과 동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첫 번째 패널은 건축가 임태병 님이었다. 그가 제안하고 실행한 중간주거는 신구세대의 각기 다른 주거 욕망의 교집합을 찾아 조율하는 새로운 주거 형태다. 한국 역사상 유일하게 자수성가할 수 있어 좋은 집을 장만했지만 관리와 활용을 어려워하는 베이비부머 세대, 그리고 주거에 관한 새로운 니즈가 왕성하지만 자본이 부족한 젊은 세대. 임태병 님은 두 세대의 생각과 고민을 한데 묶어 중간 영역이 있는 주거를 만들었다.
중간주거는 공간의 상황과 점유자에 따라 집의 일부를 유연하게 변화시킨다. 일반적인 주택에서 신발을 벗는 순간 타인의 사생활 침해를 느끼는 심리적 장애물이 없다.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전환점인 현관에서부터 신발을 신은 채 들어가는 확장의 구조기 때문이다. 서재처럼 아주 사적인 공간을 제외한 주방∙식당∙미팅룸 등은 신발을 신고 돌아다닐 수 있는 타일을 깔아 영역을 구분했다. 거주자들은 상황에 따라 문을 닫고 개인적인 공간으로 사유하거나, 적재적소에 적당한 공간을 열어 외부인과 함께 공동으로 점유한다. 공간이 열려있을 때는 초대받은 특정인뿐 아니라 동네의 이웃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는 점에서 현관의 확장이자 거실의 확장이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중간주거가 실현될 수 있는 집과 자본을 맡겨 공급하고, 젊은 세대는 적극적으로 소비한다. 그 가운데에서 임태병 님은 건축가로서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중간주거의 변화가 거주자에게 녹아들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응암동에 있는 중간주거 풍년빌라에는 혈연은 아니지만 삶의 지향점이 같은 세 공동체가 모여 산다. 임태병 님의 가족, 싱글 삽화가, 그리고 방송작가 부부다. 이들이 조합을 만들어 땅과 건축주를 찾고, 건물의 내외부를 설계하고, 같이 살아가는 방식을 협의하는 모든 과정을 함께했다. 각각의 집은 현관을 중심으로 모든 거주자에게 개방할 수 있는 점유의 공간이 있으며, 마찬가지로 신발을 신고 벗는 영역을 타일 바닥으로 구분했다. 한 집이 사용하는 두 개의 층은 상황에 따라 다른 가족과 겹쳐 쓴다. 모두가 쓰지만 누구도 관리하지 않는 푸드코트의 개념이 아닌, 집주인이라는 분명한 관리자가 유지한다는 점에서 보통의 공유 공간과 다르다. 실제로 사는 입장에서는 "집이지만 집이 아닌 것 같은 중간적인 공간이라 타인이 와도 서로 머무르는 데 훨씬 편안하다"고 한다. 거주자들이 공동 투자∙운영하는 1층 한쪽의 카페는 풍년빌라와 동네의 연결점이 되어 골목의 이야기를 담는다. 내부의 사람을 세심하게 보호하며 연결하고, 외부의 발길을 벽 없이 환영하는 풍년빌라는 중간주거로 바뀔 수 있는 거리의 풍경과 도시의 얼굴을 기대하게 만든다.

more info 풍년빌라 Harvest Mansion by brique magazine

#도심주거

박찬용은 평생 도시에서 살았다. 브랜드와 라이프스타일을 밀착 관찰해 지면에 담는 잡지 에디터로 지낸 십여 년의 배경 역시 도시다. 이력을 읽으면 도시보다 '도회' 생활에 가까울 듯한 그이지만,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동네와 골목 곳곳을 면밀히 살피며 스크린의 언어로 전달하는 인스타그래머이기도 하다. 얼마 전 자신이 살고 있는 오래된 집의 이웃, 그가 두루 바라본 도시의 양면 등 도시와 도시인의 삶에 관한 책을 썼다. 그 연장선으로 도시에서의 주거를 집필 중인 박찬용과 함께 주거문화의 면면을 읽

“멋있어 보이고 싶거나 남다른 주거 모델이 되겠다는 것도 아니에요.
나의 기보, 그리고 그보다 더 절실한 상수와 여건들이 있어요.
맞춰 살다 보니 저도 모르게 지금의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다.”

임태병 님이 집의 설계부터 완공까지 가능했다면, 두 번째 패널인 박찬용 님은 정반대 지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를 위한 집을 짓는 꿈 같은 이상 대신, 적은 예산과 많은 기준을 들고 오프라인 부동산과 온라인 부동산 앱을 전전하며 집을 찾는 현실의 여느 평범한 도시인. 특히나 1인 가구 직장인은 집과 동네를 찾을 때 회사와의 거리, 연봉으로 가능한 전세대출금의 액수, 혼자 살아도 걱정 없는 보안 등 고려할 조건이 수두룩하다. 직장인인 박찬용 님 역시 여러 조건을 꼽아가며 서울 지도를 펼쳐놓고 최선의 선택지를 찾았다. 정해진 예산, 강남권 출퇴근, 야근이라는 상수, 녹지의 간절함, 저렴한 물가, 잘 갖춰진 편의시설, 도서관∙수산시장∙주차공간의 유무 등 슬프도록 현실적인 그의 주거 조건은 많은 도시인이 쉽게 공감할 법한 요소다.
어렵게 찾은 집을 꾸밀 차례. 박찬용 님은 남들이 꼭 갖추고 사는 품목도 그의 도시생활과 상관없다면 굳이, 혹은 당장 들이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조명을 발견할 때까지 등 없는 방에서 자연광에 의지하며 일여 년을 보냈다. 냉장고를 사는 대신 편의점과 식당에 식생활을 '아웃소싱'하며 매 끼니를 해결했다. 성수동과 쌍문동부터 영국과 스위스의 벼룩시장까지, 눈에 번쩍 들어오는 물건만 있다면 어디서 어떻게든 공수해 집에 들여놓았다. 어쩔 도리 없이 주어진 환경에 성실히 적응하는 한편, 원하는 것을 포기 않는 뚝심의 고집이 보인다. 박찬용 님의 주거문화는 유별나게 멋지거나 남다르지 않다. 하지만 도시를 살아가는 누구나 긍정할 수밖에 없는 구석이 있었다. 주거의 이상론을 펼치기 어려운 서울살이에서 우리는 얼마나 현실에 타협하고, 또 얼마나 욕망을 실현할 수 있을까. 그의 이야기에서 현실을 차근차근 실현해내는 보통의 이웃이 만드는 서울 주거문화의 한 조각을 발견했다.
멋지고 좋은 각종 최신품에 둘러싸여 일하는 잡지 에디터. 으레 도회적인 세련미가 떠오른다. 하지만 <슬기로운 도시생활>에서 들었듯이, 십여 년을 잡지계에서 보냈던 박찬용 님의 주거문화에는 의외로 세속적인 화려함보다 확고한 기호가 있었다. 그의 저서인 「우리가 이 도시의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또한 번화하지 않지만 확고한 서울의 면면을 담았다. 이 책은 박찬용 님이 잡지 에디터로서 갈고 닦은 예민한 관찰력과 탐구력으로 동네 곳곳의 사람, 골목, 공간을 넘어 태도와 문화를 세밀하게 풀어낸 도시생활 그 자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도시를 움직이고 있는 우리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라는 책 소개 문장은 거대한 도시에서 아주 작은 집 하나를 꾸리며 살고 있는 우리 또한 이 도시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가 도시의 주거문화에 관해 쓴 책이 곧 출간 예정이라고 한다. <슬기로운 도시생활>에서 못다 들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 신간 소식을 기다려본다.

#도심산업 #업사이클 #간판 #커뮤니티

“한동네 안에서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게 중요해요.
같이 일하는 순간 ‘우리가 이 일로 미래까지 함께 먹고 살 수 있어!’라는 신뢰가 생기죠.
제가 이렇게 동네에서 살고, 일하고, 같이 관계를 만들어 온 중심이에요.”

창신동 골목의 사람들과 함께 지속가능한 동네 생태계를 만든 사회적 기업가 신윤예님은 창신동에서 6년째 살고 있다. 그가 처음 발견한 창신동의 모습은 아기자기한 골목, 오래된 성곽, 그리고 수많은 주택 사이로 흩뿌려진 크고 작은 봉제공장들이었다. 창신동 곳곳에 발에 치일 정도로 흔한 100L 쓰레기봉투에는 봉제공장에서 나온 자투리 천이 꾹꾹 눌러 담겨있다. 동네의 폐기물 문제를 업사이클링 디자인으로 해결할 좋은 재료였다. 신윤예 님은 수거한 쓰레기를 충전재 삼아 쿠션과 빈백으로 만들며 봉제공장 사람들과 동업자가 됐다. 창신동은 동네에서 살며 일하는 주민이 많다. 이 골목 사람이 저 골목 사람을 알고, 다른 주민의 도움을 소개받는 일도 친숙하다. 그가 연고 없는 동네에서 빠른 네트워크와 끈끈한 연대를 만들 수 있던 배경이다.
이들과 함께 고민할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국내 의류 제조업의 쇠락은 더이상 창신동에 일감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골치였던 자투리 천도 줄었다. 창신동의 일을 만들어야 동네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삶이 이어질 수 있었다. 이제 그는 창신동에서 구르고 활동하며 쌓아온 경험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1인 창작가들이 창신동의 제조 클러스터에 쉽게 진입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동네 생산 플랫폼을 실험 중이다. 여느 동네의 주민 1인으로 단순히 먹고 자며 사는 보통의 삶이 있다. 하지만 신윤예 님은 동네에 미칠 수 있는 영향, 동네 공동체와 생각을 교환하고 공생하는 창신동 사람의 삶을 택했다. 하는 일은 다르지만 같은 환경을 살아가는 도시인으로서 함께 주도적으로 동네를 살겠다는 생각. 모든 동네 사람과 교류할 필요는 없지만, 작은 그룹이라도 연결점을 만들어 새로운 선을 만드는 것. 신윤예 님과 살아가는 창신동 사람들의 도시생활 배경은 생태계가 있는 주거문화다.
요즘 간판 없는 카페가 유행이라지만, 그건 그곳이 간판 대신 SNS 채널을 세련되게 가꿔 홍보하기에 가능한 흐름이다. 창신동의 작고 오래된 봉제공장 중 대다수는 오래전부터 간판이 없었다. 전화 한 통에 수주가 오가는 단골 관계로도 잘 운영해왔기 때문이다. 시대가 바뀌고 외부 거래처가 진입을 원하는 시점에, 연세 지긋하신 공장주들이 간판 없는 힙한 카페처럼 SNS 채널을 개설해 공장 정보를 홍보하기란 무리였다. 신윤예 님의 기업 공공공간이 창신길 647번지 일대 봉제공장 54곳의 간판을 만들게 된 출발점이다. 공장주와 간판을 기획하며 이들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하고, 동네의 청소년들과 함께 간판 실물을 제작해 설치했다. 간판을 받는 조건은 공장주의 재능 기부다. 간판을 선물 받은 공장주는 공공공간의 신제품 샘플을 제작해주거나, 창신동을 견학 온 아이들에게 봉제 공정을 설명하며 새로운 연결고리를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창신동 사람들이 하나 되어 창신동을 위해 만든 간판 프로젝트는 동네에 만남을 엮는 확장의 주거문화를 보여준다.
모든 도시인은 집이라는 정해진 공간에서 각자의 삶을 건축하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무형의 주거문화 건축인이다. 직접 지은 집에서 제3의 공동체와 함께 살며 동네와의 연결을 만드는 임태병 님의 접점 건축은 이상적이었다. 골목의 커다란 표정이 바뀌기 전에, 그곳 거주민과 주변 이웃의 작은 표정부터 행복하게 바뀌는 모습이 상상된다. 멋진 이야기지만 여건상 모두가 동승할 수 없는 주거문화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서울에서 사는 1인 가구인 박찬용 님의 정직한 대응 건축은 반가운 공감대를 갖고 있었다. 또한 집 밖의 골목과 동네를 플랫폼 삼아 관계의 영역을 확장한 신윤예 님의 공생 건축은 서울에서도 다양한 동네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러한 삶의 건축물이 모여 거리를, 동네를, 그리고 도시를 만든다. 이날 8명의 참여자와 나눴던 8개의 삶 외에도 수많은 삶과 주거문화가 서울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다. 건축과 기술의 발자취를 기록하고 보존하듯 도시생활의 발자취도 기록하고 공유한다면 도시인이 서로를 더 유연하고 넓은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도시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태도의 한계를 넘어설 수도 있다.

시즌 3-1: 변화의 시대, 다시 디자인하는 워크라이프

시즌 3-1: 변화의 시대, 다시 디자인하는 워크라이프

빨라지고 달라지는 일의 공간, 적응과 성공의 열쇠는 무엇일까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11월 4일, 마지막 <슬기로운 도시생활>의 시즌이 열린 서울도시건축센터는 곳곳에 심어진 나무들의 단풍으로 가을의 정취에 휩싸여 있었다. 센터가 위치한 돈의문박물관마을의 광장에도 매일 오후마다 음악, 기악,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의 6팀이 펼치는 돈의문 가을음악회로 계절의 정감이 가득했다. 바로 이곳에서 도시 공간의 문화와 생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도시 속 사람을 잇는 대화 살롱 <슬기로운 도시생활> 시즌 3의 첫 번째 대화가 열렸다. "변화의 시대, 다시 디자인하는 워크라이프"라는 주제는 변화와 적응에 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누군가의 말에 사람들의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전통적인 일의 형태가 곳곳에서 무너져 내리는 오늘날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무언의 긍정이었다. 베이커리 Victoria Bakery 대표 김경진 님, 건축사무소 서로아키텍츠 대표 김정임 님, 브랜딩 기획자∙디자이너 한지인 님으로 구성된 3명의 패널, 그리고 5명의 밍글러가 대화에 참여했다. 김경진 님의 확고한 취향이 선명하게 보이는 빅토리아 베이커리의 케익과 함께 밝은 분위기로 시작됐지만, 고민의 무게감만큼은 뚜렷했다.

#근무 #오피스 #원격근무

가장 먼저 화두로 떠오른 것은 원격근무제였다. 산업혁명 이후 오피스의 근무 형태는 완전 개방형에서 70~80년대 파티션으로 대변되는 부서 및 개인별 구분형으로 변화했다가 2000년대 들어 다시금 개방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스마트폰과 각종 첨단 기기들이 등장한 최근부터는 원격근무가 떠오르고 있다. 물론 불가피하게 비대면을 강제한 코로나19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대규모 오피스 프로젝트를 맡아온 김정임 님은 미래의 오피스가 나아갈 방향으로 축소화∙다핵화∙분포화를 짚었다. 각기 다른 지역에 떨어져 근무하더라도 결국 사람들은 한 곳에 모여 동료와 협업자에게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화상회의 시스템 등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무경계의 네트워킹 오피스가 분포화되는 미래를 김정임 님을 통해 상상할 수 있었다.
양날의 검과 같은 자율성을 두고 장단점이 쏟아졌고, 기존보다 높은 효율을 기대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의견과 아직은 모두에게 알맞은 근무 형태가 아니라는 부정적인 의견이 함께 나왔다. 직종별로 원격근무제를 바라보는 차이도 드러났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적응해 나가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가 같은 입장을 나타냈다. 전에 없던 형태의 근무에 노동자와 회사 모두 적응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신뢰에 기반한 시스템을 구축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져야하는 점 또한 마찬가지다.
나아가 원격근무를 상황에 맞게 활용해 실용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회사와 노동자의 교집합을 찾고 최적의 근무 형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별개로 노동자 개인이 스스로에게 맞는 일의 방식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설득력을 얻었다.

#태도 #취향 #워크라이프

사회적 이슈로 시작된 대화는 자연스레 개인의 이슈로 옮아갔다. 급격한 시대 변화와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만나 각자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이야기였다. 개인적인 신변의 어려움과 불확실한 사회적 환경에서 부각되는 불안감, 그리고 비현실 같은 현실을 인식하는 방법은 제각각이었지만 고민의 크기와 지점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쁜 경험을 보편화하는 대신 좋은 경험과 안전한 기분을 태도의 기본값으로 삼는 한지인 님, 나다움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발견하는 트레이닝으로 일의 중심을 잡는 김경진 님의 이야기는 개인이 구성하는 워크라이프의 접근 방식에 영감을 전했다.
일하는 모든 이들이 고민하는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거론됐다. 저마다 자신의 소득에 대한 고민, 언제부터인가 계속해서 화두가 되는 일과 삶의 균형, 일상에서의 각종 소비, 최근 조금씩 움트고 있는 기본소득까지 다양한 테마로 대화가 이어졌다. 취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날 대화는 절정에 이르렀다. 단순한 기호를 넘어 일과 휴식, 주거, 여행 등 다양한 분야의 취향이 총망라됐다. 각자 다른 취향을 갖고 있으면서도 타인의 취향과 다양성을 함께 인정하고, 이를 독립적으로 즐기면서도 때로는 향유할 수 있는 지점을 고민했다.
도시인의 일상, 사회를 넘어 도시생활의 핵심인 워크라이프에 관한 이야기로 마지막 시즌의 문을 연 <슬기로운 도시생활>. 이날 2시간 동안 참석자들의 대화는 높고 낮은 밀도를 오가며 숨 가쁘게 진행됐고, 수많은 담론과 고민을 쌓아둔 채 막을 내렸다.
누군가에게는 스스로를 정리하는 시간이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공감을 통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각기 다른 연령대의 참여자가 모였지만 같은 일을 고민한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끼는 한편, 다른 이들의 방식을 거울삼아 자신을 성찰하는 이도 있었다. 빠르고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를 감히 재단하고 해답을 찾아내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쉼표든 숨표든, 느낌표든 물음표든 모두들 각자가 한 개씩의 점을 찍을 수 있던 대화의 자리였다.
늘 그랬듯이 답을 찾을 것이란 거창한 각오보다는 기분 좋은 열린 결말이 때로는 사람을 더 나아지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결말을 함께 열어보는 대화, 각자의 삶과 세계를 교류하는 장은 도시의 지금과 미래를 선명하게 담는 제3의 공간으로 자리할 것이다.

시즌 3-2: 이상과 현실을 잇는 즐거운 나의 도시

시즌 3-2: 이상과 현실을 잇는 즐거운 나의 도시

일상을 충분히 그리고 충실히 보냈다면 이제는 비일상을 만끽할 차례. 꼼짝 못할 정도로 사람이 가득한 지하철과 늦은 밤까지 환한 빌딩 숲을 지나 우리는 각자만의 즐거운 도시를 찾아 나선다. 일상의 한편엔 활기를 충전할 비일상의 시간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저 유행만 숨 가쁘게 따라가는 건 아닌지 고민이 된다. 문득 나의 도시뿐만 아니라 당신의 도시와 우리의 도시, 그리고 그 도시를 만드는 플레이어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도시의 즐거움은 무엇을 향해 흘러가고 있는 걸까.
날 선 찬바람에 코 끝이 빨개지던 11월의 어느 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울도시건축센터에는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슬기로운 도시생활> 시즌 3의 마지막 대화 "이상과 현실을 잇는 즐거운 나의 도시"를 진행하기 위함이었다. 서둘러 달려오느라 숨이 찼지만 고민의 해답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괜스레 설렜다. 패널로는 월간 <디자인>의 편집장 전은경 님과 콘텐츠 브랜드 TMI.FM 대표 차우진 님,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OTD Corporation의 대표 손창현 님이 함께했고,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밍글러가 둘러앉아 즐거운 도시에 관한 생각과 고민을 나누었다.

#재미 #도시

“주인공이 나라서 그래요. 과거에는 동경할만한 대상을 찾고 좋아하는 것에서 그쳤다면 지금은 달라요. 인플루언서를 좋아하는 건 똑같지만, 주인공은 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죠. 소비 패턴과 노는 문화도 그런 생각에 맞춰 달라지고 있고요. 자기표현 폭발의 시대예요.”
- 월간 <디자인> 편집장 전은경

확실히 서울은 무척 재밌어졌다. 다양한 전시와 새로운 공간, 흥미로운 이벤트들이 끝도 없이 열리고 막을 내린다. 덩달아 도시를 즐기는 사람들의 수준도 높아졌고 각자만의 슬기로운 도시생활 이용법을 갖고 있다. "옛날에는 카페에 빈티지 가구 하나만 놔둬도 센스있다고 여겨졌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대중들은 넓어진 시야를 통해 조금 더 감각 있는 디자인에 니즈를 드러내죠." 전은경 님이 말했다. "저는 그런 대중과 공간을 만드는 기획자들, 도시 개발자나 디벨로퍼들의 힘 덕분에 도시가 이렇게 즐거워졌다고 생각해요."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하면서 공간 소재의 콘텐츠가 많은 관심을 얻고, 이 관심은 자연스레 공간을 디자인한 사람에게로 향한다.
사람들의 생각과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따라 공간의 의미도 출렁인다. "호텔을 예로 들 수 있어요. 최근에는 야외수영장이 있는 호텔의 투숙률이 굉장히 높죠." 차우진 님의 말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여졌다. 한여름의 무더위가 밀려올 때마다 인스타그램을 가득 채운 호텔 야외수영장 피드를 떠올렸으니까. 밀레니얼(Millenials)과 Z세대를 아울러 부르는 MZ 세대는 보이는 것에 익숙하다. SNS를 활용해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거침없고 다양한 경험의 후기를 남긴다. 내가 주인공인 세상이라는 전은경 님의 말처럼, 내가 재밌어야 즐거운 도시가 될 수 있다.

#장소

“공간과 장소는 같은 말이 아니에요. 공간(空間)이 비어있는 의미라면 장소(場所)는 무언가 일이 벌어지는 곳이죠. 도시는 장소성의 개념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공간이더라도 나에게는 굉장히 중요하고 즐거운 장소일 수 있어요. 그런 차이에서 도시가 구성되고 이벤트가 벌어지죠. 위기도 물론이고요.”
- 콘텐츠 빌드업 브랜드 TMI.FM 대표 차우진

좋아해야 하는 문화가 선택되던 때가 있었다. 선택받지 못한 문화는 자연스레 비주류로 여겨졌고, 전문가 또는 지식인이 추천하는 것들이 우리가 사는 공간을 가득 채웠었다. 그러나 도시는 달랐다. 단지 비어있는 공간의 의미가 아닌, 살아가는 이들의 이벤트로 채워지는 장소였기에 즐기는 사람이 도시의 중심으로 설 수 있었다. 취향이 스민 공간은 장소로 탈바꿈했고 도시인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차우진 님은 사회학자 미셸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의 말을 빌려 대중이 아닌 사용자로서의 우리를 설명했다. "파리는 계획도시였어요. 평민 계급을 원활하게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졌죠. 하지만 그들은 통제하는 방식대로 움직이지 않았어요.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걷고 도시의 골목을 만들었죠. 걷는다는 건 아무것도 아닌 본능적 행위처럼 보여도 사실은 아주 능동적이고 저항적인 행동이에요. 그들의 발걸음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창의적인 개성을 보여줬으니까요. 도시의 사용자가 된 거예요." 그의 말처럼 도시의 힘은 어떤 강압적인 통제나 시스템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발걸음에서 비롯된다.
취향의 다양성이 존중되고 대중의 눈이 높아지면서 좋아하는 수준에서의 차이는 크게 드러나지 않게 됐다. 차우진 님은 그보다 성큼 다가온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의 문제를 지적한다. "취향은 상향 평준화라고 표현할 정도로 달라졌지만, 이제는 오히려 공간에서 격차가 드러날 거예요." 코로나-19 이전의 서울은 누구나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보기 좋은 디자인을 맘껏 누릴 수 있었다면, 코로나-19 이후로 달라졌다. 개개인은 공간의 안전함과 각종 이벤트, 그 안에 녹아있는 취향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크고 작은 비용을 지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과 차, 편리한 도시 상권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 뒤에는 발 디딜 공간 하나 마련하기 쉽지 않은 이들이 있다. 도시 공간의 점유는 적지 않은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에 확보된 공간 안에서 구성되는 취향에는 당연히 저마다의 격차가 드러나게 된다. 지금의 취향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방식이라면, 앞으로의 취향은 공간을 차지할 수 있는 비용을 가졌는지의 여부에 따라 표현될지도 모른다.

#변화 #비대면

“코로나-19로 인해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배타적인 분위기예요. 공간을 공유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던 도시가 이제는 경계해야 할 대상이 된 거죠. 앞으로의 공간 기획이나 디자인의 방향도 매우 달라질 텐데, 어떻게 다시 도시를 관계 맺는 장소로 만들지는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라고 생각해요.”
-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OTD Corporation 대표 손창현

우리는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상을 마주하고 있다.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코로나-19는 개인의 하루를 바꾸고 도시의 미래를 좌우한다. 사람이 찾지 않던 공간을 리테일 콘텐츠 요소의 결합으로 탈바꿈하던 손창현 님의 고민도 깊어졌다. "다양한 사람들이 공간을 공유하면서 즐기길 바랐어요. 공간 일부의 밀도를 높이면 다른 쪽에는 여유가 생기니까 그곳에 이벤트를 만드는 거죠.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더 이상 가까워지려고 하지 않아요. 이제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서 예전으로의 회복도 바랄 수 없어요. 라이프스타일이 변하는 거예요."
전염병은 사람 간의 계산적인 거리와 배타심을 불러왔다. 무질서 속의 질서처럼, 자연스러운 도시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워진 것이다. 서로가 살결을 부딪히고 끊임없이 마주하는 자생적인 도시 생태계를 원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의 답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어렵다. "원래 사옥은 회장님만을 위한 공간이었어요. 지상의 좋은 공간은 높은 분들에게만 내어줬던 거죠. 하지만 현대의 사옥들은 오히려 로비를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내리고, 지상의 공간은 누구나 이용하도록 만들었어요. 다양한 숍들이 들어서고, 미식을 즐기는 공간이 됐죠. 그런데 지금은 다시 꽁꽁 막아뒀어요. 참 아쉬워요."

그러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비가시적인 위험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곁의 사람과 가깝길 바라고, 새로운 관계의 흥미도 내재한다. 전은경 님은 말한다. "규칙은 계속 바뀐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과 규칙에 유연하게 대처해야죠. 라이프스타일은 고정적이지 않으니까요."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 김준섭 님도 거든다. "도시는 평등해요. 모두에게 열려있고 밤에도 밝게 빛나거든요. 코로나19로 심각한 위기가 찾아온 건 분명하지만, 누구도 도시를 등지고 살아갈 순 없어요." 이동과 만남이 제한된 상황에서 무작정 낙관적인 말을 읊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의 도시는 변하는 중이다. 사람을 만나거나 일하는 방식도, 집이라는 공간의 인식도 모두 달라지고 있다. 익숙했던 생활 방식에 매달리며 안주하기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변화를 맞이한다면 이상과 현실을 잇는, 각자의 즐거운 도시가 완성되지 않을까.
전은경 편집장의 월간 <디자인>은 1976년부터 디자인의 지금과 미래를 아카이브하는 일종의 도시안내서다. 508호에서는 도시인들이 찾는 전국의 공간 100개와 함께 각 공간별 기획자∙운영자∙디자이너의 크리에이티브한 생각을 소개한다. 비록 실제 공간을 하나하나 찾아가기 쉽지 않은 시기이지만 공간과 생각을 향유하는 지면의 끝에 다다른 순간, 생동감과 아름다움이 있는 도시생활의 나침반을 쥐어든 느낌으로 마지막 장을 덮게 될 것이다.
그 어떤 단어로도 불안함과 급격한 변화의 벽을 넘을 수 없던 2020년. 6월을 시작으로 6회에 걸쳐 36명의 도시인을 이어온 <슬기로운 도시생활>이 한 해의 끝에 막을 내렸다. 이토록 어려운 격변의 시기에 우리가 필요한 것은 현실성 없는 모범 답안의 학습이 아닌, 지금 우리가 함께 보내는 시간을 공유하고 기록해 만드는 연대와 공감의 장이다. 서울시도시공간개선단의 서울도시건축센터는 <슬기로운 도시생활>을 통해 이러한 장을 마련하고 도시 속 사람을 연결했다. 어려운 시기에 모두가 격차 없이 누릴 수 있는 제3의 장소로 한 걸음 더 가까워진 셈이다.
<슬기로운 도시생활>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지만, 도시에 관한 우리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공유보단 경계의 가치가 우선하는 현재는, 색다른 즐거움을 구상하거나 조금 더 나아진 도시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우리에게 큰 안심을 안겨준다. 도시는 자유롭고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는 점. 나와 우리의 도시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얼마만큼의 생명력을 불어넣을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스스로가 결정한다. 밤이 깊어가는 지금도, 내일도 그리고 그 후의 시간에도 도시의 불빛은 쉽게 꺼지지 않을 테니까.

운영: 프럼에이